스팀 인디 신작 중, 독특한 설계와 불합리함 속 논리를 절묘하게 섞은 ‘베인브링어(Banebringer)’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외형만 보면 평범한 로그라이크지만, 실제로는 유저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며 ‘선택의 결과’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게임이다. 출시 초기에는 스트리머 몇 명의 방송 덕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정식 발매 이후 ‘운보다 선택이 더 무섭다’는 유저들의 평이 줄을 이으며 확산세를 타는 중이다.
게임의 구조는 간단하다. 플레이어는 ‘운명을 끊는 자’라는 역할을 맡아 매번 구조가 바뀌는 탑에 올라 전투를 치른다. 문제는 탑의 룰이 ‘사전 정보 없음, 회피 없음, 선택만 있음’이라는 데 있다. 전투든 회복이든 상점이든 모든 구간은 3개 중 1개를 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름만 바뀐 함정이거나, 오히려 플레이어의 약점을 강화해버리는 보상도 존재해, “모험을 한다는 건 결국 실수와 함께 걷는 것이다”라는 제작진의 철학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베인브링어’가 그저 불친절한 게임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플레이를 반복하며 얻게 되는 파편과 기억 조각을 통해, 유저는 이 세계의 논리와 규칙을 퍼즐 맞추듯 유추해나간다. 실수는 곧 경험으로 바뀌고, 경험은 다음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이다. 처음엔 무작정 열쇠 역할로만 보이던 동료 NPC들이 사실 각자의 목적과 사연, 그리고 숨겨진 분기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게임은 다시 전혀 다른 장르처럼 느껴진다. 예컨대, 수수께끼의 망토 소녀 ‘라일라’는 특정 상황에서만 동료로 합류하며, 그녀를 일정한 조건으로 배신하면 이후 모든 전투에 변수가 생긴다. 스토리와 시스템이 연결되는 이 지점이 ‘베인브링어’의 진짜 묘미다.
그래픽은 도트 기반이지만 몽환적이고 거칠게 표현된 배경 덕에, 고전 RPG 감성과 현대적 불확실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음악도 눈에 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음원이 왜곡되거나 멜로디가 한 음씩 틀어지는 연출이 들어가 있어, 플레이어의 심리 상태를 미묘하게 건드린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복할수록 그 위화감이 게임 분위기와 완벽히 어우러진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베인브링어’는 유저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룰을 설명하지도 않고, 실패를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 속에서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고, 메타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성장과 몰입을 제공한다. 최근 몇 년간 로그라이크 장르가 ‘도전과 성장’의 공식화된 틀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서, ‘베인브링어’는 과감하게 그 공식을 벗어나 고유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게임의 핵심은 단순한 ‘운’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마주했을 때의 인간 심리, 그리고 선택 이후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점에서 ‘베인브링어’는 단순한 로그라이크가 아닌, 선택지 기반 심리게임에 가깝다. 플레이어가 얼마나 예민하게 사고하고, 실수를 성찰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정답 없는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그리고 게임을 통해 어떤 철학적 물음을 마주해보고 싶은 유저라면, 이 불친절한 던전에 한 번쯤 들어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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