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단순히 디지털 콘텐츠로만 존재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주요 게임사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공간’이 아닌 ‘게임을 경험하고 머무는 공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대형 게임사들이 서울 주요 상권에 오프라인 공간을 대거 확보하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서울 성수, 한남, 압구정 등 유동인구와 문화적 트렌드가 맞닿은 지역에서 게임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 게임사는 본사 사옥 외에도 자회사 명의나 SPC(특수목적법인), 혹은 펀드를 활용해 복합문화공간, 쇼룸, 전시존을 운영할 수 있는 부지를 순차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 목적은 단순한 부동산 시세차익이 아니라, 브랜드 스토리와 커뮤니티 기반의 ‘경험 설계’에 가깝다.
이들이 선택한 공간은 대부분 일반 상업시설과 차별화된다. 예를 들어, 성수동의 한 건물은 외관만 보면 카페나 스튜디오 같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게임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아트월, 개발 히스토리를 담은 갤러리, 체험형 플레이룸이 들어서 있다. 이는 단순한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공간에 투영한 일종의 ‘문화 플랫폼’이다.
오프라인 공간 확보는 게임사 내부 전략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유저를 온라인에서 확보하고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유저가 브랜드와 물리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접점을 강화하며 충성도를 높이려는 흐름이 보인다. 최근 MZ세대 중심의 리테일 소비 트렌드가 ‘물건’보다 ‘경험’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방향을 뒷받침한다.
부동산 투자 방식도 점차 다각화되고 있다. 일부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리테일과 오피스, 스튜디오, 공유 오피스를 복합적으로 설계해 활용도와 수익성을 모두 고려한다. 또 다른 곳은 공간 일부를 외부 브랜드나 크리에이터와 협업한 팝업스토어나 렌탈 스튜디오로 활용해, 단순 부동산 소유 이상의 ‘콘텐츠 유통 채널’로 기능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이 투자하는 공간의 운영 주체가 반드시 게임사 본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계열사, 관계사, 혹은 투자 파트너사를 통해 공간을 분산 관리하면서도 게임이라는 중심 키워드를 잃지 않는다. 이를 통해 공간 하나하나가 각각 독립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
게임은 결국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다. 그 이야기를 단순히 모니터 안에서만 머무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거리와 공간 속에 물리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따라 브랜드의 영향력은 달라진다. 일부 게임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이유다.
결국 이 같은 오프라인 공간 투자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 ‘브랜드 세계관 확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은 그저 자산이 아니라 세계관의 물리적 구현이며, 유저가 직접 발을 들여 경험할 수 있는 입체적인 플랫폼이다.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공간은 그 경계를 연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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